최근 국민연금공단의 한 지사에 이런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대부분의 가입자ㆍ수급자가 연금을 1만원이라도 더 받으려고 애쓰는데, 10만원 적게 달라니 연금공단 입장에선 황당한 민원이다. 알고 보니 다른 사연이 있었다. 연금을 10만원 더 받으면 건강보험료를 더 낼까 봐 걱정한 것이다.
정부는 최근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건보 피부양자가 연간 200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면 지역가입자로 신분이 바뀌게 됐다. 지금은 연간 합산소득 3400만원이 넘어야 지역가입자가 되는데, 오는 11월부터 이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것이다. 합산소득에는 금융소득(예금 이자, 주식 배당 등), 사업소득, 근로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공무원ㆍ사학ㆍ군인ㆍ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매달 167만원 이상 타는 은퇴자는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고, 월평균15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렇게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건보 피부양자는 연 소득 2000만~3400만원인 이들로 전체 피부양자의 약 1.5%(27만3000명)다. 이들은 지역가입자로 바뀌어 월평균 14만9000원씩(4년간 일부 경감) 부담하게 된다.
건보 부과체계 개편은 부담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간 피부양자로 인정받으면 소득과 재산이 있어도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지역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계속 제기돼왔다. 연 소득이 100만원~120만원 이하인 지역가입자도 연간 20만2015원의 건보료를 부담한다. 소득의 20%가량을 건보료로 내는 셈이다. 우리나라 건보 피부양률은 직장가입자 1명당 피부양자 1명꼴로 독일(0.29명), 일본(0.68명), 대만(0.49명) 등 해외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이런 제도 변화를 앞두고 연금 소득이 피부양자 기준에 걸쳐있는 이들이 고민에 빠졌다. 특히 연금액을 늘리려 연기연금(연금 받는 시기를 미뤄 최대 7.2% 더 받는 제도), 임의계속가입(만 60세 이후에도 최대 5년간 계속 가입해 연금액을 늘리는 제도) 등을 활용했던 이들의 불안이 크다. 연금공단은 가입자들의 연금 수령액을 늘리기 위해 이런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는데 뜻밖의 건강보험 관련 민원으로 난처하게 됐다고 한다.
연금공단 지사의 관계자는 “건강보험 부과체계가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 연금을 많이 받는 수급자들이 ‘연금을 적게 받게 해달라’는 식의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라며 “연금제도와 전혀 관계없는 건보 때문에 발생한, 예상하지 못한 민원인 데다 정해진 연금액을 덜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건보 피부양자에서 탈락할 만큼 많은 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많지는 않다. 국민연금 제도의 역사가 30여년 남짓이라 장기간 연금 보험료를 낸 이들이 얼마 되지 않아서다. 지난 3월 기준 국민연금(노령연금) 수급자는 495만명에 달하지만, 이들의 평균 월 연금액은 57만5418원에 불과하다. 연금 수령액이 월 160만원∼200만원 미만인 고액 연금 수급자는 6만9252명이고, 월 200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2994명이다.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월 245만9700원을 받는다.
앞으로 고액 연금 수급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연금공단 본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연기연금ㆍ임의계속가입 등 연금액을 늘릴 수 있는 제도 가입 상담을 할 때는 건보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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